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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의 장원급제
<김시화 칼럼>방랑시인 김삿갓이 주는 교훈(제2회)
김사화

명문 가문의 출신인 그가 왜 일생을 삿갓에 의지해서 사는 바람에 김삿갓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었으며, ‘방랑시인’이라는 호칭이 말해주듯이 전국을 떠돌다가 전라도에서 객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게다가 전해오는 그의 행적은 기괴하기 짝이 없어서 분명히 무언가 사연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게 한다.

 

김삿갓의 조부이신 김익순(金益淳)은 1811년(순조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 당시 평안도의 선천(宣川) 방어사로 난이 일어난 것을 알면서도 술에 취해 잠에 들었다가 반란군이 들이닥치자 항복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바람에 난이 평정되고 난 후 김익순은 사형에 처해진다. 그러자 김병연(삿갓)의 아버지 김안근(金安根)은 그 당시의 법이었던 연좌제에 희생될 아이들의 안위를 걱정하게 되어 피신할 곳을 찾게 된다. 그때 마침 김익순이 데리고 있던 종복(從僕) 중에 김성수(金聖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의리가 굳은 사람으로 이미 김병연의 선친들과 맺었던 정을 잊지 못하고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형인 병하와 병연 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 주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김익순 자신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항복에 그친 것임을 감안하여 김익순에게 내렸던 벌을 감하여, 처벌을 당하는 사람을 김익순 한사람으로 하고 멸족은 면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미 아버지 김안근은 세상을 떠났고, 형제는 어머니 함평 이씨와 재회를 했지만 기울어진 집안은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형제는 홀어머니 손에 이끌려 여주, 가평 등을 전전하다가 강원도 영월로 이사를 한 후 그곳에서 아주 어렵게 생활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혹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조부의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고, 다만 자식들을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하면서 꾸준히 공부를 시켰다.

 

집안은 폐족에 가까워 아주 어렵게 생활했지만, 사람의 천재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김삿갓의 시에 대한 천재성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 천재성 때문에 김삿갓의 운명이 극적으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가 스물이 되던 해, 결혼하고 이제는 자신의 앞날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실력이 이 정도면 남들 앞에 나서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지방의 과거에 응시한 것이다. 

 

그가 응시했던 과거의 시제(試題)는 “가산군수 정시의 충절을 찬양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탄핵하라(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였다.

 

이 시제가 나온 이유는 김삿갓의 조부 김익순이 항복을 했던 홍경래의 난 당시, 선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산의 군수였던 정시는 김익순보다 직급도 낮은 문인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를 했다. 따라서 정시는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관리의 모범이니 그를 칭송하고, 김익순은 항복한 역적이니 그의 죄를 탄핵하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응시하여 관리가 되려는 이들에게 나라를 위해 충절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시제를 받아 든 김병연은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인 것은 까맣게 모르는 사실이니만큼 거침없이 그의 천재성을 드러냈다.

  

원문을 인용하고 번역하기에는 너무 많은 분량이라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썼다.

 

<김익순은 들어라. 정시는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항복하지 않았지만, 너희 가문이 성은을 두터이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항복을 하였구나. 그러니 당연히 너는 선왕들이 계시는 저승에도 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한 번 죽는 것 가지고는 안 되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다. 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해야 한다.> 

 

중국 충신들의 예를 들어가면서 정시를 찬양하고, 김익순을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어야 마땅하며 만 번 죽어도 모자라는 인간으로 묘사하였다.

결과는 당연히 장원급제였다.

 

김시화/하남YMCA이사장/서울외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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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8/02 [17:28]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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