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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산업혁명
<김시화 칼럼> 4차 산업혁명과 우리가 나아갈 길(제1회)
김시화

우리는 현대를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며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자고 한다. 매스컴은 물론 웬만한 강연회의 주제에 단골손님으로 자리 잡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로, 마치 4차 산업혁명을 모르면 당장 세상을 살아나가기 힘들 것 같은 불안감마저 생길 정도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는 이미 3차까지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겪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무언가 인류가 겪어야 할 문제가 있었으니까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의 의미는 무엇이며 각각의 산업혁명마다 인류가 직면했던 문제는 무엇일까?

 

혁명의 의미는 지금까지의 관습이나 제도를 단번에 깨뜨리고 새롭게 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것들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다. 따라서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기존의 산업 질서가 깨지고 새로운 구조로 개편되는 것이니, 부분이나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로 혼란이 올 수 밖에 없기는 하다. 그렇다고 모르고 앉아서 당하는 것보다는 알고 미리 대비를 한다면 피해를 극소화하거나 아니면 피해를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다.

 

1차 산업혁명은 1760년~1840년 사이에 겪은 것으로 철도와 증기기관을 발명한 이후 사람의 손으로 생산하던 수공업을 기계에 의한 생산으로 바꿈으로써 생산의 수량을 늘린 일이다. 사람의 손에 손보다 훨씬 빠르게 일할 수 있는 기계와 사람보다 힘이 센 증기기관이 쥐어지면서, 손으로 하던 작은 일 하나에서 힘이 필요한 일까지 사람만이 할 수 있던 일을 기계가 훨씬 효율적으로 하게 되었다.

 

더더욱 증기기관은 사람이 혼자서는 못하고 여럿이 힘을 합해야 겨우 할 수 있는 일도 혼자의 힘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어 조정하는 사람만 있으면 되기에 힘을 쓰던 많은 사람은 쓸모가 없어지고 말았다. 결국 노동자들의 해고로 이어졌고, 잉여 노동력에 의해 실업률이 치솟자,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으로 잉여 노동력을 이전하는 처방을 내리게 된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이민을 추진하고 이민자에게는 신대륙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쓰게 된다. 그러나 이 혁명은 전통적으로 이어오던 장인정신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장인이 되는 것보다는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 즉 기술자가 되는 것이 더 효용가치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대륙으로 이전하는 잉여 노동자들이 신대륙에서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남북 아메리카 가릴 것 없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을 무차별 사살하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약탈함으로써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져가고 인디언들은 재기 불능의 사태를 맞게 되는 인류의 비극을 초래한다. 

 

지금도 해석이 불가능하여 불가사의라고 일컫는 페루의 마추빅추 같은 잉카유적이나 멕시코의 마야문명 같이 인류가 다시는 접할 수 없는 문화가 파괴되고 그 유산을 소유하고 있던 원주민들은 살해되고 만 것이다. 단지 문명을 파괴하고 원주민을 살해한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유럽문화만이 우수하다는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혀 그 문화유산을 말살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 큰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1차 산업혁명의 이런 병폐에도 불구하고 기계는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만들어 내는 것의 주체는 어차피 사람이고 기계는 그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현대에 와서는 기계가 제작한 제품에는 장인정신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장인의 혼이 깃든 수제품을 선호하지만, 그 맥을 이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기계를 도입한 당장은 인간이 기계에 맹신하는 바람에 스스로 밀려났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이라는 결론을 맺게 되는 것이다. (제2회에 계속)

 

김시화/하남YMCA이사장/서울외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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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6/14 [16:06]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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