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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滿洲國)
<김시화 칼럼> 미⋅중 패권 전쟁의 명과 암...<제5회>
김시화

만주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던 일본의 본격적인 만주 점령 계획은 만주국 건국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청나라 말기의 혼란기에는 중국과 청나라를 양면으로 지원했다. 군부는 비공식적으로 청나라 후손인 장쭤린(張作霖)을 지원했고, 극우 단체인 겐요샤는 쑨원(孫文)과 장제스(蒋介石) 등 신해혁명을 주도하여 중화민국을 건국한 한족의 지도자들이, 일본 유학파 내지는 망명을 경험했던 자들이라는 이유로 친분을 앞세워 그들을 지원했다. 어느 편이 이기든 간에 일단 긴밀한 관계를 맺어 놓고 시작하자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전세는 중국에게 유리하게 흘러갔고, 무엇보다 만주를 저령해야 하던 일본은 작전을 바꿨다.

 

장쭤린은 청나라 군벌로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망하자 고향인 봉천성(奉天省; (현)요녕성)에서 자위대를 조직하고 그 세력이 점점 커지자, 만주를 독립정부처럼 운영하며 베이징까지 진출하여 1926년에는 베이징에서 대원수직에 취임하기도 한다.

 

그러나 1927년 통일 중국이라는 기치 아래 북으로 진격해오는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에 눌려 약해지기 시작했고, 일본은 베이징을 국민당에 넘겨주고 퇴각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장쭤린은 일본의 퇴각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1928년 6월 4일, 일본의 명령에 의해 베이징에서 천진으로 퇴각하던 장쭤린은 열차 폭발사고로 숨지고 만다. 청나라나 중화민국과의 조약을 통해서 괴뢰 군벌인 장쭤린을 내세우는 것보다는 직접 만주 지배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관동군 참모들이 그를 암살한 것이다. 

 

장쭤린을 암살한 일본은 그 내막을 아는 그의 아들 장쉐량(張學良)이 국민당 정부 편으로 돌아서자, 1931년 9월 18일 만주철도 선로를 스스로 폭파하고 그 사건이 장쉐량 지휘하의 중국군에 의한 소행이라고 몰아붙이며 관동군이 만주 침략을 개시했다.

 

1931년 10월 요녕성(遼寧省)에 있는 장쉐량의 거점 금주(錦州) 폭격을 시작으로, 1932년 1월에 금주, 2월에 하얼빈을 점령하여 만주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1931년 11월부터 준비했던 대로 천진에 망명 중인 청나라 마지막 황제 애신각라부의(愛新覚羅溥儀 : 아이신기오로푸이)를 탈출시켜 만주국의 황제로 삼았다. 

 

1932년 3월 1일 만주국 행정위원회가 건국을 선포하고, 3월 9일 애신각라부의가 국왕에 취임함으로써, 대동이라는 연호를 쓰는 새로운 국가인 만주국으로 출범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만주국을 전국하고 그곳에 악명 높은 731부대를 만들어서 인간을 실험 도구로 하는 생체실험을 하는 등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 만주국을 설립한 목적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일본 열도와 떨어져 있는 곳에 생체실험을 자행할 수 있는 부대를 만듦으로써 설령 화학무기나 세균이 방출되더라도 일본인에게는 안전하고, 실험에 필요한 사람들을 무작위로 잡아들여도 일본인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생체 무기이므로, 만주에서는 육로를 이용해서 간단하게 이송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곳이었다.

 

일본에게 있어서의 만주는,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곳이었다. 당연히 직접 지배하고 싶었지만, 국제적인 합법성을 인식한 일본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애신각라부의를 내세워 만주국을 했다. 그 결과 핀란드, 덴마크, 소비에트 연방 등 20여개국이 만주국을 승인하여 국제적인 합법성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연합4개국은 만주국을 일본이 세운 어용국가라고 해체한다. 이것이야말로 연합국의 폭거다. 비록 일본이 만주국을 지배하고 있었다지만 만주국은 그 당시 엄연히 황제가 군림하는 독립 국가였다.

 

여타 식민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뿐이다. 당연히 만주국을 독립시켜 주려고 노력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국은 자신들의 이익 배분을 위해서 만주국을 해체하고 그 영토를 중국에 넘겨주었다.

 

김시화/하남YMCA이사장/서울외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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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5/31 [16:38]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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