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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돌문화 공원과 추사관
<허정분 여행기> 제주 살이...여덟 번째 이야기
허정분

제주 돌문화 공원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제주 돌 문화 공원을 찾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과 전시품들이 온통 제주 화산 돌인 전시관이다. 매표소도 주차장도 석상도 모두가 돌인 전시관 멀리서도 보이는 오백장군의 석상이 장관이다. 아직 완공하지 못한 부분을 2020년까지 민관공동 작업으로 100만평의 대지위에 조성된다는 어마어마한 공원의 설계도를 보면서 돌 공원이 보여줄 신비의 세계를 상상하며 발길을 옮긴다.

 

제주를 통틀어 가장 신화적인 설문대할망(할머니)의 이야기를 테마로 조성되는 공원은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제주민의 삶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줄 공원이라고 한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창조한 설화속의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절해고도 제주도는 돌이 많고 척박한 땅에 바람이 심해 지붕이 날아가는 섬이다.

 

▲ 제주대문 정량돌     © 시티뉴스

 

신화속의 설문대는 할망의 이름으로 거녀(巨女)였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그녀가 치마폭에 흙을 가득 담아 쌓아 올린 산은 한라산이 되고 떨어진 흙부스러기들은 높고 낮은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한라산과 백록담을 베개 삼아 누워 두 다리를 제주시 앞 관탈섬까지 뻗었다고 한다. 그런 할망에게도 배필이 생겼는데 설문대 하르방(할아버지)이었다.

 

부부는 오백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 아들들에게 먹일 죽을 쑤다가 그만 할망이 죽 솥에 빠져 죽었다. 그런 줄 모르고 아들들은 죽을 맛있게 먹었고 막내아들이 솥 속에 빠진 할망의 뼈를 보게 되었다. 막내아들을 슬피 울다 서귀포 앞바다까지 흘러가 외돌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오백 명의 아들들도 슬피 울다 모두 백록담 아래 동북쪽 수직암반인 기암괴석으로 굳어버려서 영실(靈室)기암으로 불리게 되었다는데 외돌게 막내아들을 뺀 499개의 암반이 천태만상의 형태로 즐비하게 늘어서서 오백 장군으로 불렸다고 한다.

 

2006년도에 개원한 공원입구 연못에는 설문대 할망에 대한 또 다른 전설로 할망이 연못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는 물장오리 연못의 억새풀이 마지막 수의처럼 황금베옷으로 치장하고 객을 맞는다. 보이는 모든 것이 검은 돌인 곳 통로도 하루방도 다리도 숭숭 구멍 뚫린 화산 돌이다. 설문대 할망 제단과 오백장군을 상징하는 큰 탑을 지나 축구장 넓이의 하늘연못에 다다랐다.

 

둥근 원형의 연못이다. 연못을 밭치는 너른 광장이 연못보다 작은 곳이다. 전설속의 설문대 할망의 죽 솥과 또 다른 죽음으로 전해오는 물장오리란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연못을 상징하는 의미로 원형의 연못을 만든 것인데 지름이 40m 둘레가 125m로 지극한 모성과 키가 큰 할망이 자랑삼아 연못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약점을 부각시키는 의미를 함께 둔 곳이다.

 

이어 지하 박물관으로 내려가면 중앙에 바닷물과 제주도의 모형이 용천수의 분출지형과 함께 나타난다. 제주에는 360개의 화산분화구인 크고 작은 오름이 있다. 산처럼 나무와 계곡이 있어도 한라산 외에는 모두 오름으로 불리는 곳이다. 평지에 비해 뚜렷이 솟은 오름들은 수많은 제주 숲을 만들고 청정한 공기와 수림을 보유해 휴양림과 숲길 비자림 둘레길을 선사한다.

 

박물관 내부에 180만 년 전 고생대 이후 대륙붕이 마그마의 분출로 대륙에서 떨어져 나오고 다시 지각변동으로 화산폭발과 함께 여러 형태의 화산석이 탄생한 과정을 사진과 스크린터치로 보여준다. 바람에 의해 풍화변용 된 돌은 내부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형태로 전시되어 있는데 신의작품 한 점 한 점이 특이한 걸작으로 절로 탄성이 나온다.

 

박물관은 화산석 특유의 기묘한 형상들이 수석으로 진열되어있다. 특히 바람과 열에 의해 큰 구멍을 내부에 간직한 돌이나 나무껍질 혹은 용접의 불똥 같은 형태의 괴석들도 눈길을 끈다. 도저히 신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단단한 돌을 저런 괴기하고 묘한 예술품으로 둔갑시킨 제주의 신들이 왜 1만8천 명이나 되는지 믿는 순간이다.

 

3코스로 나뉜 공원에서 3코스로 들어섰다. 상록수 외에도 넝쿨로 뻗어가는 천연의 숲이 세월을 거슬러 고대시대로 이끄는 숲길이다. 선사시대 무덤의 양식인 고인돌이 모여 있다. 이 거대한 돌무덤의 주인은 꽤 높은 부족이거나 지배자였으리라 곳곳에 <뱀조심> 이라는 팻말을 세운 것으로 보아 습하고 돌 많고 산책길 외에는 들어가기 힘든 자연의 요새가 파충류에게 최적의 보금자리인 듯하다.

 

선사시대부터 주거해 온 인류가 돌을 생활에 접목한 여러 모형의 돌 전시관 1,2,3 관과 탐라국, 고려, 조선시대를 이어온 돌문화의 정석을 고스란히 재현한 검은 돌집들이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절구 맷돌 돌확 구들돌 주춧돌 그리고 무덤을 장식했던 문인석 장명등 동자석 외에 돌대문 정낭 민간신앙의 지주인 돌탑과 정주석이 시대별로 또는 종류별로 이끼를 머금고 수천 년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불변의 돌이기 때문에 가능한 보물이리라.

 

▲ 오백장군상     © 시티뉴스

 

너무 호젓한 산책로 동자석 수백 개가 키재기를 하는 한편에 수천 개쯤 되는 맷돌이 돌 두상이 저절로 경건한 마음을 불러오는 영세불망석 앞에서 나도 기원과 편안을 빈다. 인간과 신과 자연의 조화를 이렇게 절묘하게 접목한 문화를 누리는 행복도 제주라는 특별히 선택받은 신의 섬이기에 가능한 일 건조한 육지로 돌아갈 길이 저 검은 돌의 무게다.

 

영실기암에서 나들이 온 오백장군이 기립한 곳이다. 오백장군갤러리 입구부터 거대한 바위들이 일제히 머리에 두상을 얹고 제주를 지킨다. 설문대 할망의 아들들이다. 저절로 압도당하는 혹은 든든한 상반된 느낌이 숫자에 놀라고 크기에 놀라고 전혀 다른 모습에 놀란다. 그 뒤로 오십여 기의 돌탑은 오백장군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담당하는 지킴이다.

 

혹여 그대 제주에 오시면 꼭 이곳은 다녀가시라 삼다도의 가장 멋진 핵심이 이곳이다.


추사(秋史) 김정희 유배지

서귀포시 대정읍에는 추사로가 있다. 그곳에 제주에 유배되어 약 9년간의 유배생활을 한 가옥과 추사를 기리는 기념관 추사관이 있는 곳이다.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영조. 정조 대에 실학에 바탕을 두고 청나라 학풍을 전수 조선의 유학과 혼용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또 세한도(歲寒圖)라는 국보 제 180호 문인화를 그린 그림과 추사체라는 명필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조선시대 가장 혹독한 형벌은 삼대를 멸하는 형벌외에도 사형과 태형, 장형 등 죄인의 볼기를 치는 형벌과 옥사에 가두는 도형 유배를 보내는 유형등으로 죄의 중함에 따라 제도를 달리했다고 한다. 그중에 가장 가혹한 형벌이 가족들과 떨어져 격리된 생활을 해야했던 유배형이 아니었을까

 

▲ 세한도     © 시티뉴스

 

당파싸움과 일인군주제의 시대에서 올곧은 직관으로 군주를 보필하기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우선시하던 정치인들이 정적을 제거하기위한 방편인 모함으로 죄 아닌 죄를 쓰고 사람이 살기 힘든 산간벽지나 절해고도로 보내지는 유배형, 살아서는 다시 한양 땅을 밟지 못하고 사망하는 죄인들이 속출하는 형벌이었다.

 

당시 예조참의 직책을 수행하던 추사는 윤상도(1768~1940)가 올린 탐관오리를 탄핵하는 상소문의 초안자로 몰려 이곳 제주라는 절해고도의 섬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유배자가 머무는 제주읍에서도 멀리 떨어진 대정읍까지 오게 된 그에게 위리안치라는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형벌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의 학식과 인품을 사모하는 근동주민들과 멀리 육지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제자 및 벗들은 위안과 동시에 또다른 학문으로 스스로를 닦는 수양과 가르침을 주는 계기로 삼은 추사! 김정희였다.

 

유배지의 추사를 그리는 벗은 파도치는 바닷길을 마다않고 제주를 찾았다. 초의선사가 세 번이나 그를 찾앗고 반년간 함께 지냈다. 또 제자인 소치 허련이 스승을 모시러 제주를 찾으며 추사의 초상인 <완당선생해천일립상>을 그렸다. 청나라의 문화를 조선의 학문과 비교하며 새로운 학풍을 전파시킨 위대한 선각자였다.

 

그분을 기리는 추사관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경모하는 마음은 나뿐만 아니라 제주민과 이 나라에 국적을 둔 모든 국민의 마음이 아닐까 세한도의 견고한 건물을 본떠 지은 추사관 내부로 들어서자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보인다. 좌상을 얹은 추사영실과 반듯반듯한 수직과 직각으로 이어진 제1관 2관 3관에 추사의 글씨 서간문 현판과 세한도 평소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듯 완벽하고 경이롭다.

 

▲ 추사 김정희 동상     © 시티뉴스

 

세한도!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인 건축가 서예가 화가의 가슴에 남은 의문부호? 시인은 시로 예찬했고 건축가는 도면으로 혜량했고 서예가는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접목시키며 붓글씨에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제자인 이상적(1804~1865)이 책을 보내준 보답으로 그려준 그림이라는데 소나무와 잣나무 가옥 한 채로 표현되는 간결한 그림에 <歲寒圖> 와 阮堂이라는 낙관이 찍혀있다. 이 그림에 붙는 찬사와 해석이 앞으로도 세대를 건너 무궁한 상상을 발휘할 보물 앞에서 나 혼자 부족한 감상과 느낌으로 먹먹하다.

 

추사관 옆에는 실제로 거주했던 초가집이 복원되어 있다. 조그만 방안에서 초의선사와 차를 마시고 제자들에게 교육하는 모습도 모형으로 모셔져 있다. 너른광장에 모신 동상이 인상적인 현실에서는 따를 수 없는 인간애와 강직함이 전부였던 선생의 예술세계가 고스란히 재현된 추사관! 어쩌면 절해고도의 섬에서 선생은 영원히 ‘너 자신을 알라’는 주제로 서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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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06 [14:06]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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