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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이 육지로 오기까지
<허정분 여행기> 제주 살이...서귀포에서 세 번째 이야기
허정분

이제 겨우 제주 살이 두 달 살기로 접어든 이방인이 얄팍한 감상으로 감귤에 대한 기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일 수도 있다. 노란 껍질 속에 든 새콤달콤한 과실, 제주도가 우리지도에 없다면 감귤이 지금처럼 풍족하게 전 국민의 과일로 사랑받을 수가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 서귀포에 감귤에 대한 모든 자료를 소장한 감귤박물관이 있다.

 

제주에 와서 두 번째 방문길이다. 시에서 운영하는 박물관 65세 이상은 무료관람이다. 숙소에서 1.5km 걸어야 하는데 월라봉 이라는 오름을 낀 지형에 자리 잡아 경관이 으뜸이다. 박물관을 중심으로 월라봉 산책로, 감귤족욕장 피자와 과줄을 만드는 체험장이 있다. 또 세계 각 나라의 감귤나무를 심은 전시관 아직 가보지 않은 아열대 식물관까지 이 코스에 있다.

 

박물관 오르는 도로변에 식재한 감귤나무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황금빛으로 귤을 달고 있다. 황금빛감귤과 이어진 노란 하귤이 어른주먹보다 큰 열매를 매단 길이다. 따고 싶다는 관광객의 손길을 막는 것은 경고팻말과 신고하는 시민의 눈이 감시카메라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길에서 만나는 풍경에 월라봉의 깍아내린 절벽도 한 몫을 하는데 도로에서는 안 보인다.

 

이곳 주민들의 한해 농사인 귤밭 돌담길을 걷노라면 담 밖으로 노출된 귤을 따 먹고 싶다는 유혹에 양심과 싸워야 한다. 뭍의 농사꾼인 내가 할 짓이 아니라 나는 마른침만 삼키며 다니다 귤을 따는 농부를 만나면 횡재한 기분이 든다. 솔직히 귤 좀 먹고 싶다고 하면 그분들은 상품가치가 없는 귤을 거저 가져가라는 인심을 쓰신다. 과즙공장으로 보내지는 귤인데도 인심이 넘친다. 하지만 남의 것을 몰래 따면 절도나 다름없다.

 

▲ 흙 고르고 다지는 농기구     © 시티뉴스
▲ 제주 물허벅     © 시티뉴스



 

 

 

 

 

 

 

 

 

 

 

 

 

 

 

 

 

 

 

 

 

 

박물관 입구에 심어진 하귤 일족으로 둥글게 꾸민 길에 제주 최고령 하귤나무 기념비가 서 있다. 올해로 126년이 된다는 문헌상으로 확인된 최고령의 하귤나무다.

 

제주시에 살고 있는 고인이 된 김병호씨가 고사한 나무둥치를 베어냈는데 다시 가지를 뻗어 귤이 열렸다는 전설 같은 나무다. 그 씨앗으로 발아한 자식과 손자 등 직계 자손들이 해마다 천오백개 이상씩 과실을 품는다고 하니 나무지만 기념비를 세워 기릴 만 한 공적을 세운 나무다.

 

2005년 설립한 공립박물관 내부에는 감귤의 역사와 종류, 세계감귤의 면면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영상과 기록은 물론 제주농가의 표본실과 농기계전시실 민속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삼다(三多)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유래와 삼무(三無)도적, 거지, 대문이 없다는 섬에서 생산되는 감귤의 효능 종류 연대별 발전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특히 영상으로 제작된 조선시대 나라에 대한 진상품으로 감귤이 신분상승의 역할까지 했다는 기록은 이 과일이 얼마나 신기한 남녘의 특산품이었는지 알려준다. 귤을 잘 키운 노비는 노비신분을 면천했다가도 자연재해로 목표상납이 어려우면 다시 노비로 환원되었다는 당시에 감귤나무는 제주민에게 애환의 나무였다.

 

 관에서 감귤이 열린 꼭지를 헤아려 기록했다가 그 개수가 모자라면 다른 곡식을 세금으로 수탈해서 감귤나무에 뜨거운 물을 끼얹어 죽이기까지 했단다.  삼국사기에 탐라국으로 일컫는 하나의 나라였던 제주는 고려 조선을 거치며 조선시대 말을 육성하는 섬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 했을뿐만 아니라 감귤진상과 해산물진상 등으로 민간인의 삶은 매우 고달프고 힘들었다고 한다.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일본어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신기해하며 제주 감귤 역사에 열중이다. 오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최고의 관광지로 사랑받는 제주, 모든 외국인이 즐겨 찾는 곳도 제주다.  

 

박물관 옆 세계 여러 나라의 감귤나무가 자태를 뽐내는 전시관이다. 이 큰 유리전시관에는 각 나라의 귤 143종이 200여 본 식재되어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산 외에 일본 나무가 제일 많은 숫자다. ‘리스본 레몬’ 이란 이름을 가진 포르투갈 귤은 조롱조롱 꼭 콩알만 한 귤이 수없이 달려 있어 이국적이다. 또 ‘불수감’의 국적은 인도 동북부라고 팻말에 적혀 있는데 청량고추 작은 것 수십 개를 한 꼭지에 매단 것처럼 특이하다. 먹어도 매울 것 같다.

 

▲ 만백유     © 시티뉴스
▲ 사두감     © 시티뉴스



 

 

 

 

 

 

 

 

 

 

 

 

 

 

 

 

 

 

 

 

 

 

가장 눈길을 끈 귤은 ‘만백유’라는 이름의 귤로 베트남 태생이며 귤 하나에 2kg까지 나간다고 한다. 엄청나게 크다. 정육량으로 따지면 세근반 정도니 얼마나 무거울까만 한 가지에 서너 개씩 매달고도 끄떡도 없다.

맛좋은 품종끼리 자꾸 개량한 ‘한라봉’ ‘천혜향’ 외에도 ‘병귤’ 과 제주도 재래감귤인 ‘인창귤’ ‘산물’ ‘사두감’ ‘동정귤’ ‘감자’ ‘지각’ 등 재미난 이름 등 열 종류가 넘는 나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전시관을 둘러보며 귤 재배의 희비를 겪으며 살아 온 제주민의 애환을 눈과 마음에 담는 이방인이 하는 일이란 폰에 담는 일뿐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주는 것은 일 년 삼백육십오일이라는 공평한 시간의 세월뿐일 것이다. 부모를 잘 만난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 공평한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운명과 팔자가 달라진다.

 

모든 사람은 다 잘살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산다. 인간성보다 잘사는 척도를 지금도 재산의 기준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TV드라마도 재벌이나 그 부를 세습하는 과정의 갈등을 보여주어야 시청률이 오르는지 온통 부자들의 이야기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유통기한이 끝난 지 오래됐다.

 

어린 시절부터 지독한 가난과 맞대면해 살아 온 삶의 방식으로 나는 ‘일중독자’ 라는 별칭까지 얹고 살았다. 청춘시절도 그랬지만 결혼하고도 아이들과 생활고를 이기는 방법은 오로지 온몸으로 몰두하는 일의 중독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생활비보다는 자녀들이 주는 용돈과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농사에서 얻는 작물과 식재료로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행운이다.

 

 ‘집 떠나면 개고생’ 이란 말이 있다. 뜻밖의 휴가며 쉼 같은 이 여행길에서 다시 두 달 살기를 계획하자 밀려오는 불안감과 내가 이렇게 편해도 되나 하는 이유가 일중독자의 발바닥을 간질였다. 또 날마다 표나게 줄어드는 여행자금도 불안했다.

 

▲ 제주 감귤밭     © 시티뉴스

 

나는 산책길에 도로변에 있는 큰 건물을 유심히 살펴봤다. 점심시간인지 밖으로 나오는 비슷한 내 또래의 아낙에게 여기서 일하냐고 물었다. ‘알바’를 한다는 분이었다. 사무실까지 찾아간 나에게 과장이라는 여성이 내일 하루 나와서 일해 보라는 호의를 보였다.  나는 20일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하며 노동으로 굳은 어깨뼈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일람을 출근시간 한시간전에 맞춰놓고 그 밤 내내 낯선 일터를 갖가지 상상으로 떠 올리느라 불면의 밤이 샜다.

 

법인 ○○산지감귤유통센터란 간판처럼 그곳은 감귤을 선별하고 포장하는 삼층 건물(이곳에서는 선과장이라고 부름)로 대부분 젊은 사람들 수십 명을 고용한 선별장소였다. 내부가 천여 평쯤 되는 1층은 여덟시부터 시작되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다. 절반은 정직원이고 학생부터 거의 사오십 나이의 아낙들 틈에서 환갑넘어 보이는 늙은 아낙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알바일은 시급으로 최저 임금을 지급하고 하루8시간에 70,000원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제주도가 가장 바쁜 계절이어서 나이불문하고 알바를 구하는데 이곳은 제주에서 세 번째로 큰 선과장이라고 한다. 또 우리나라 대기업인 ㅇ마트에 지정 납품하는 회사로 내부에 귤 상자와 귤이 담긴 큰 플라스틱 바구니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반장의 지시대로 삼단계단을 올라 둥근 쇠막대가 양팔을 뻗어도 모자랄 만큼 긴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다. 반대편에도 알바생이 섰다. 네모난 큰 입구에 쏟아 붓는 귤은 네 단계로 나뉜 선별장소를 통과해 또다시 벨트를 타고 크기가 선별되고 마지막 하자가 없는 상품만 효돈감귤 박스에 담긴다.

 

그 촘촘한 쇠막대가 돌아가는 한 공간에 무려 천개 정도의 감귤이 바람의 속도로 구르면서 다음단계로 넘어가는데 거기서 불량낙과를 골라내야 하는 일이다. 한순간도 눈을 떼어서도 안 되지만 늙다리 초보가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바라 본 것은 무서운 컨베이어 속도였다.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는 시간이다. 방심하면 장갑 낀 손이 딸려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왜 여기까지 와서’ 후회가 막심했다. 쉭쉭 바람소리를 내며 공간을 누비는 지게차의 운전도 공포였다. 꼼짝없이 제 자리에 서서 주어진 몫을 해야 하는 일이 알바생의 임무고 시간제 돈벌이였다. 핑핑 돌던 컨베이어가 쉬는 시간 오전타임이란다.

 

육십 마일에 이어 칠십 마일의 속도로 달려가던 시간의 속도가 그날은 왜 그리도 더딘지 하루가 다 간 것 같은데 점심시간이란다. 상품으로 나가는 귤은 겉모양이 우선이다.  조그만 상처나 흠집이 난 귤은 다른 귤까지 썩게 만드는 성질이 있어서 폐기처분이고 겉모양이 매끈하지 않아도 골라서 주스공장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 컨베이어에 올려져 있는 귤     © 시티뉴스

 

선별과정에서 세척하고 광택을 내고 포장을 해 소비자에게 팔리기까지 불량을 골라내는 양이 엄청나다. 녹초가 되어 집으로 온 나는 왜 하루 일을 해 보고 결정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너무 힘든 일이라서 육지에서 온 알바생들이 제주 토박이들의 일에 못 따라가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새로운 일에 온 신경을 집중했는지 눈을 감아도 굴러가는 로러와 귤만 보였다.

 

하루를 쉬고 출근한 나는 20일을 하겠다고 한 약속을 열흘로 축소했다. 하루종일 한 자리에 서서 하는 일이 무릎연골주사까지 맞는 나에게 너무 벅찬 일이어서 할 수가 없었다. 알바일이라 당장 그만둬도 상관은 없었다.

 

그 열흘을 나는 육지 일중독자의 본능을 드러내듯 열심히 일했다. 끝없이 쏟아지는 귤 더미, 제주의 귤이란 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드는 효돈감귤의 탄생지였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알바생들의 인생론이 펼쳐진다. 여자들은 모두 토박이 제주민이고 젊은 대학생들만 외지인이 많은 일터다.

 

이곳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원주민들도 모두 생활에 쫒겨 일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여자는 일안하고 집에 있으면 동네에서 욕을 하는 풍습이 있단다. 감귤농사와 더불어 겨울 한철을 알바로 돈을 버는데 법정 휴일을 빼고도 야근까지 하면 이백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하루일당을 바로 받는 감귤 따는 알바부터 배추와 무를 수확하는 일 모두 알바생들이 돈을 버는 일감이 너무 많다는 제주 여성의 근면성은 이미 전국에 알려져 있다.

 

회사 내부에서 사방은 물론 코앞까지 설치한 cc카메라로 기계사고와 알바생의 일을 감시한다는 일터에서 나는 9일을 채우고 쉬는 날 알바에 종지부를 찍었다. 더는 그런 무리한 일에 내 몸을 쓰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건강을 걱정하는 아들딸의 마음에 자꾸 엄마의 힘든 모습이 보이는지 하루가 멀다고 그만두라는 성화가 고맙고 고된 일보다 나이를 의식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됐다.

 

나는 지금 상품화 되지 않는 귤을 한 바구니 농가에서 얻어다 놓고 일 년 농사를 헛되게 한 아까운 요놈들의 귤 맛을 날마다 음미하는 중이다. 귤 밭마다 버려진 낙과가 내년에는 너를 키우는 주인께 제대로 귤 값 좀 하라는 기원까지 보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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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02 [11:20]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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