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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도 어머니가 산다
<허정분 여행기> 제주 살이...서귀포에서 두 번째 이야기
허정분

서귀포에는 서귀포 시내를 아우르는 관광명소로 서귀포 칠십리 축제를 해마다 연다. 중앙로타리에서 남쪽으로 1km정도 내려가면 곳곳이 천혜의 관광지다. 가장 유명한 하늘과 땅이 만난다는 천지연(天地淵) 폭포, 정방폭포 소정방폭포가 이곳에 있다. 보목동에서 외돌개까지 올레 6코스로 이어진 바닷가 해변에서 보여주는 전경은 어떤 아름다운 은유로도 전달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 서귀포항     © 시티뉴스

천상의 신들의 그 옛날 인간이 살기 전에 놀러 와서 싫컷 놀다 주물러 놓고 간 놀이터 같다. 아무렇게나 주무른 검은 흙이 굳어서 작은 섬들이 되고 절벽의 폭포가 되고 파도가 철썩이는 해안선이 되어서 지금은 인간이 휴식을 취하는 휴양지 같다.

 

그 칠십리 길에 신들이 만든 절경 외에 인간이 만든 온갖 조형물이 건축물이 남방 한계선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식물들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이중섭 미술관이 있고 매일올레 장터가 있고 공연장 기념관 세섬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다리 세연교와 제주도시비(詩碑)를 세운 시공원이 그 안에 다 있다.

 

이방인이 가장 많이 찾는 천지연 폭포다. 이름이 비슷한 천제연 폭포가 노약자가 다니기 불편한 계단을 주로 오르내리며 걸어야 한다면 이곳은 평지를 걷는다. 가는 곳마다 만개했던 동백꽃도 뚝뚝 선혈 떨구듯 지는 나무와 아직 꽃망울을 피우지 못한 늦된 나무도 많다. 먼나무의 홀림은 여전히 진행형인데 입구에 나란히 키 재기 하듯 늘어선 돌하루방이 물씬 제주 내음을 담고 있다.

 

돌다리를 사이에 두고 석축사이로 흐르는 못물위에 한쪽 발을 들어 올린 (그새가 황새인지 왜가리인지 두루미인지 백로인지 모르는) 새 한 마리가 미동도 없다. 그림 같은 한 폭의 정경에 수많은 사람들이 폰의 앵글을 맞춘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반가사유상의 불상처럼 고개를 옆으로 숙인 깊은 고뇌 (내려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목이 긴 흰 새, 경건하고 경이롭다.

 

왜 제주도가 고사리 섬인지 다니다 보면 알 수 있다. 하다못해 집근처 돌무더기에도 고사리의 푸른 줄기가 지금도 올라온다고 봐도 된다. 천지연 폭포를 양쪽으로 나눠서 자생하는 난대림 사이로 고사리류의 숱한 푸른 식물이 폭포의 운치를 더해준다.

 

제주의 나무인 담팔수는 잎이 줄기 끝에 우산처럼 퍼진 모양새인데 비슷한 아열대나무가 많다. 동백 먼나무 귤나무 벚나무 외에 도로변에 심은 굵은 둥치의 나무가 거의 담팔수라고 보면 된다.

 

▲ 천지연     © 시티뉴스

 

천지연 폭포는 인간세상과 담을 쌓으려는 신들이 만든 연못으로 폭포의 반대편에서 절벽을 향해 활쏘기 시합을 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높이 22m의 절벽에서 낙하하는 하얀 물줄기의 장관이 큰 울림으로 아우성치는 물의 명줄이다. 인간이 하루도 물 없이 어찌 살까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물의 소리, 그 한없이 스스로 낙하하며 뭍 생명을 살리는 연못에는 천연기념물인 무태장어가 산다. 넓은 연못은 수심 20m가 된다고 한다.

젊은 연인들의 이름다운 배경이 되어주는 신의 놀이터를 인간은 염탐하기 바빠서 수없이 사진에 담는다. 천천히 발을 옮겨 서귀포 항으로 연결된 도로위에서 세연교에 오른다. 방파제 앞에 있는 무인도 세섬과 연결된 다리다.

 

 평평한 오름으로 중앙에 선 아치형태의 조각물과 다리 끝 흘러나오는 음악이 절로 쉬게 만드는 둥근 의자에서 저무는 서녘의 바다를 바라보는 황홀은 뭍에서 지친 내 삶을 위무하는 존재의 이유다.

 

서귀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숙소로 오는 샛길이다. 한적한 도로변 허름한 창고(귤밭에 딸린 가건물로 쉼터 겸 창고)앞에서 귤을 선별하는 할머니를 뵈었다. 며칠 전만 해도 가지가 찢어지게 달렸던 귤이 수확을 했는지 푸른 잎만 매달린 귤나무 밭이다. 내 주머니에 달랑 삼천 원이 있었다.

 

▲ 귤 농장     © 시티뉴스

 

시장 노점상에서 작은 바구니 귤이 이천 원이면 삼천원어치도 팔 것이다. 큰 소리로 “할머니” 하고 부르자 담 옆 열린 문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이다. “어서왔소까?” 제주도는 이지역의 방언으로 타 지역민이 알이 들을 수 없는 말로 도민까리 대화한다. 그래도 많은 여행객들과 표준말의 표준화로 이방인과는 표준말과 혼용한 방언도 대화가 통한다.

 

다리가 아파서 일어나가도 힘들다는 할머니는 낯선 나를 마치 이웃 대하듯 앉아서 귤이나 까먹으라고 하시는데 올해 여든 둘되셨단다. 큰 플라스틱 상자에서 무조건 맘껏 골라가란다. 좋은 귤은 미리 선별한 듯 했다. 책이 든 배낭에서 시장용 가방을 꺼냈다. 다 가져가라는 말씀에 절반정도만 채우는데 기어이 가방가득 채워 주시는 할머니 눈가가 축축 젖어있다. 고운 모습이신데 금방이라도 넋 놓고 울 표정이시다.

 

나는 그런 눈빛의 아픔을 짐작한다. 평생을 눈물을 매단 눈이기에 얼굴 살이 없고 주름진 고랑마다 삶의 질곡이 패인 노년, 100세 시대를 사시기에는 턱없이 쇠잔한 노년이 나를 말벗삼아 자꾸 이런저런 말씀으로 마음 바쁜 내 발길을 붙잡아 매신다. “내 초면에 이런 말 하는기 아닌디 자꾸 말 하고 싶수다” 욕심껏 가방 가득 채운 밀감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흘려듣던 나도 할머니의 그렁그렁한 눈물에 주저앉았다.

 

제주섬에서 온전히 24대를 이어 오며 살고 계시다는 할머니는 오래전에 베트남전쟁에 두 번 씩이나 다녀 온 남편을 사별하고 삼남매를 키우신 분이라고 하신다. 아들 둘 딸하나 그런데 잘 사셨다는 내말에 “막내아들이 사고가 났는디 그때 죽었으면 가심에 묻지 하매 살아서 내 죽지도 못하수까” 무슨 사고냐고 묻자 삼성에서도 그런 사고는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단다.

 

그 후 좋다는 곳은 전국을 다녔다고 하신다. 경기도 광주 삼육재활병원에서도 재활치료를 받았다는 아들, 팔순노인의 방언과 곁들인 신세타령에 나는 처음에는 삼성그룹에서 일하던 막내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래도 잘 사셨다고 위로해 드리며 일어서는 내게 혹시 귤 보낼 곳 있으면 잘 아는 가정집이 있으니 가게보다 싸고 농약을 쓰지 않아 좋다고 데려다 주겠다고 하신다.

 

한 상자분량의 귤을 거저 얻은 나도 양심상 그럼 그 집이 어딘지 같이 가시자고 팔을 부축했다. 그 집은 바로 할머니농장과 도로사이 건너편 새로 지은 듯 깨끗한 집 이었다. 이 도로를 오가며 너무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에 여러 사람이 사진을 찍던 귤 밭을 낀 집이다. 할머니는 익숙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현관 앞에 쌓인 귤상자를 열어보면서 주인을 부르셨다.

 

그때 한참동안 적막하던 집에서 누가 왔느냐고 집사람 없다고 소리쳤다. 현관과 맞닿은 방 통 유리창으로 보이는 침대에 벌렁 누워서 우리를 바라보는 젊은 남성, 나는 저 무례한 남자가 주인이면 귤이고 할머니고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데 창문이 열렸다.

 

그때 두 손이 손목아래서부터 한손은 손가락이 모두 절단된 주먹손이고 또 한손은 주먹자체가 없는 남성이 엉금엉금 침대에 기댄 모습을 보고 말았다. 충격적인 장애인이었다. 말을 잃은 나 대신 남성과 몇 마디 제주도 말을 나눈 할머니는 내 팔을 끌고 대문을 나섰다.

 

제주도는 한마을에 한곳은 정자가 있는 섬이다. 숙소 앞에만 가도 정자와 운동시설이 깨끗하게 설치되어 있는데 이용객이 전무한 긴 의자에 할머니가 나를 앉았다가라고 끈다. 울창한 해송과 펜지꽃 수선화와 조약돌이 깔린 작은 정원이 시민이 공유하는 휴식장소다.

 

 “저놈이 내 막내아들이외다. 두 다리도 없는기 와 살아서...” 할머니는 조용히 눈물을 보였고 찌르르 전율처럼 죽음에 대한 상실과 아픔이 있는 나는 내 슬픔과 범벅을 이룬 아픔에 함께 울었다.

 

기골이 장대한 청년이 장애인이 된 동기는 무얼까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였다고 한다. 삼성이라고 하시던 말은 삼성병원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십 몇 년 전 제주에는 태풍으로 엄청난 양의 비가 한라산을 중심으로 내렸단다. 젊은 청년은 날씨가 개이자 데이트 중이던 아가씨와 한라산을 올랐다고 한다. 한치 앞을 모르는 사람의 운명이었다.

 

어느 계곡을 지나는 순간 통나무와 낙엽으로 빗물을 가득 채웠던 계곡이 터지면서 청년은 통나무에 채이고 계곡물에 떠밀리면서 드넓은 하천까지 떠내려 왔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가장 크다는 병원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헤매던 청년을 살린 것도 어머니의 모정이었다. 어머니는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통보에 기절했고 깨어나서 죽어도 좋으니 서울 삼성이라는 병원에 아들을 데려가 달라고 병원장에게 큰 뇌물까지 쓰면서 매달렸단다.

 

그렇게 오게 된 병원에서 환자와 어머니가 의사에게 들은 말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절단해야 명줄이라도 건질 수 있다는 참혹한 진단이었고 기막힌 현실에 아들은 죽고 싶다고 이곳으로 데려 온 엄마를 원망했단다. 의사는 환자가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야 수술 후 현실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   섬의 어머니  ©시티뉴스

 

남편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평생 할머니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현실에서 어머니가 병원비며 재활비를 어찌 감당하셨는지 주름진 얼굴과 한발씩 떼는 걸음에서 훤히 보였다. 오로지 귤 밭농사로 다리며 온몸이 다 녹았다고 모진고생을 하며 오늘까지 살았으나 이제 갈 길이 머지않은 것 같다는 말씀 끝에 한숨이 깊다.

 

그런데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뛰어 와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손자라고 하셔서 큰 아들의 손자냐고 물어보자 아까 그 아들의 아이라고 하시니 내 귀를 의심했다. 한아이도 아니고 손자가 둘이란다. 엄마가 왔다고 한다.

 

내가 아들이 어떻게 결혼했는지 물었다. 그 당시 물난리에 아들은 떠내려가는데 산기슭으로 밀려난 처녀는 다행히 아무 상처도 없이 구조가 되었단다. 그 처녀가 말리는 친정식구들 모두를 외면하고 아들과 결혼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마도 할머니도 그 과정에서 갈등이 심하셨던 모양이다. 모든 난관을 이기고 아이들까지 낳고 사는 부부, 나는 인간승리라고 환호라도 하고 싶었다.

 

다시 할머니와 그 집을 찾았을 때 여장부 같은 젊은 아낙이 반긴다. 귤 두 박스를 아이들에게 보내고 돌아서는 손에 또 들려주는 귤 언제든지 또 오고 소개해 달라는 씩씩한 소리에 나는 며느리 너무 잘 보셨다고 아들이 얼마나 좋겠냐는 말로 대문을 나섰다. 할머니는 조금 올라가는 골목집의 큰 아들과 산다고 하신다. “아주 철부지야 아무것도 안 해,마당의 풀도 다 내가 와서 해주고 밭일도 내가 다 해 줘야 해” 할머니의 잣대로 잰 시대 차이다. 이렇게 개발되기 전에 제주에서 여자는 오로지 일하는 존재로 여겼다.

 

그 시대를 산 할머니의 당연한 질책을 나는 “아들과 사는 딸로 여기시면 되지요. 아드님이 가족이라는 힘으로 꿋꿋하시잖아요.” 라는 말로 그 가족에게 크리스마스 축복처럼 하늘의 은총이 있기를 바랬다. 살아 갈 날이 힘들면 살아 온 날의 기억은 상처가 된다. 장애가족을 둔 집안은 언제나 살얼음판을 딛는 것처럼 이웃이나 사회의 차별을 의식한다.

 

이제 일손을 놓고 한생의 평안을 가족들에게 받아야 할 할머니는 당신의 잘못도 아니지만 평생 아들이 장애로 살아야 할 미래를 당신의 잘못처럼 눈물로 가슴으로 통탄하면서 생을 마감하시리라

 

뭍의 수많은 어머니들이 다 자식에게 매여 살 듯 섬의 어머니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자식에게 눈물겹다.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지만 그 공평성에서 벗어나도 어머니는 그 호명만으로 진심으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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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27 [09:52]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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