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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일가상 수상자 선정 -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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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일가상 수상자 선정

농업- 카토 겐조우, 산업- 유한재단, 사회공익- 박청수

일가기념사업재단(이사장 김상원)은 제10회 일가상 수상자로 농업부문에 카토 겐조우(加藤源藏, 75), 산업부문에 유한재단(이사장 연만희), 사회공익부문에 박청수(63)씨를 각각 선정 발표했다. 제10회 일가상 시상식은 오는 9월 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충정로 소재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국내외 인사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다.

농업부문 수상자인 카토 겐조우씨는 ‘한 사람이 백 보를 걷기 보다 백 사람이 한 보를 나가는 것이 낫다’라는 신념으로 농업협동조합의 발전과 아시아간의 농업기술 교류, 종자개량 등 농업발전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산업부문 수상자인 유한재단은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재단으로 기업의 이윤을 사회로 환원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공적으로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회공익부문 수상자 박청수씨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자들을 찾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섬기는 열정적인 봉사자로 지금까지 30년동안 세계 44개국을 대상으로 봉사의 삶과 인류애를 몸으로 실천해 왔다.

한편 일가상은 국내 유수한 다른 상과는 달리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아시아 지역에서 귀중한 업적을 낸 외국인에게 상을 주는 국제적 명성과 권위를 지닌 국내 유일의 국제상이다. 특히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평생 몸바쳐 일하신 일가 김용기 선생(가나안농군학교 창설자)의 정신을 아시아 전 지역에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상이기도 하다.

일가기념사업재단은 일가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성금을 모아 그것을 기금으로 상을 주고 있다. 일가 선생의 제자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회 저명인사들이 마음을 모아 지난 89년 9월 5일에 본 재단을 설립해 소외당한 이웃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이 민족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던 선생의 정신을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전파하는데 목적을 두고있다.

역대 일가상 수상자로는 잠롱(태국 방콕 시장), 진재량(광일농장), 박종규(주/KSS해운 회장, 바른경제동인회 회장),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이시돌목장), 엠마 프라이싱거(한국 나환자정착을 위해 헌신), 박진환(전 농협대학장), 문창모(문이비인후과 원장), 고 최태섭(한국유리 명예회장), 덩푸팡(중국장애인연합회 주석, 등소평의 장남) 등 농업과 산업, 사회공익을 위해 노력해 온 이들이 선정됐었다.

<고승선 기자> koss@ctnews.co.kr


수상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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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부문 수상자 카토 겐조우>

일본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한 사람이 백 보를 걷기 보다 백 사람이 한 보를 나가는 것이 낫다’라는 신념과 생명산업으로서의 농업의 가치를 인식하고 협동조합 발전과 농업 진흥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1951년 일본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지역사회의 재건과 부흥을 이루고자 출신지의 練馬(네리마)농협에 투신하여 농협조직을 통해 농지 정비, 우량 품종의 개량과 보급, 영농기술 지도, 농산물 판로의 개척 등 동경지역의 영농환경조성에 주력하였다. 1960년대의 산업구조 재편성에 발맞추어 동경지역의 도시근교형 선진농업 건설을 주도하였고 도농간 주거환경 격차 해소를 위해 ‘농주개발협회’를 설립, 농촌주택 개선에 힘썼다.

한국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양국 농업의 인적, 물적, 기술 교류를 추진하며 네리마 농협과 서울시 농협간의 자매결연을 성사시켰으며 우량종자 및 종묘의 개발 기술 전수, 농업지도자 연수 등 양국 농업의 공동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91년부터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한 일본 이치노미야지역의 복숭아 재배기술 교류와 품종 개발 정보 교환을 주선하여 전주지역이 복숭아 산지로 이름을 떨치게 된 데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아시아와의 공생’이라는 신념으로 대만, 일본, 한국 3국간의 민간농업단체를 회원으로 한 ‘동아시아농업기구회의’ 창설의 산파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일본 내의 한국김치보급, 재일 한국인 지위향상을 위해 애써 1985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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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문 수상자 유한재단>

유한재단은 유한양행 창업자인 故 유일한 회장이 기업의 이윤을 사회로 환원하기 위해 1970년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창업자인 유일한 회장은 1926년 일제치하에서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유한양행을 설립하였다. 그는 ‘우수 의약품 생산을 통한 국민 보건 향상,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통한 사회발전, 성실한 납세를 통한 국가 발전’이란 세 가지 창업정신을 갖고 올바른 기업관과 경영이념을 정립, 실천하였다.

1930년대 일제치하에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전환, 우리나라 최초의 공개기업으로 만들었으며 사원지주제와 당시엔 획기적인 사원복지개념을 도입하여 기업을 경영하였다. ‘기업의 주인은 사회이며 개인은 잠시 관리만 맡을 뿐’이라는 그의 신념은 세상을 떠나며 전 재산을 사회 환원함으로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유일한 회장의 뒤를 이은 연만희 이사장(현 유한재단 이사장)은 1961년 유한양행 입사이래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 소유와 경영의 완전분리의 기업경영체제를 구축하는 데 매진하였다.

(주)유한양행의 종업원사주조합의 발전에 진력함은 물론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하는 요체하고 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의 임기제한(2기이상 금지)을 유한양행 사장 재직시 사규로 정하여 스스로 후진에게 물려주어 원활한 후계 계승의 전통을 확립하였다. 또한 가장 우수한 의약품, 고도의 품질관리를 거친 의약품의 생산 보급에 노력해 왔으며 보건관련 투자사들을 설립하여 그 영역을 더욱 확대하였다.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전략경영뿐만 아니라 이 이윤을 사회로 환원할 수 있도록 의약학 발전을 위해 학술상을 제정하고 의과대학 및 약학대학에 장학금과 교육시설 기자재를 지원하여 산학협동 체제를 구축하며 훌륭한 의약학인의 양성 배출에 힘썼다.

또한, 유한재단을 통해 장학금지급, 교육사업지원, 노인복지사업, 장애인지원, 극빈 어린이 심장수술지원 등 각종 사회복지사업을 펼침은 물론 92년 유재라 봉사상 제정과 95년 유일한상을 제정하여 사회에 고인의 뜻을 널리 알리고 기억하도록 힘썼다.

기업은 창업자가 훌륭한 기업문화를 남겨 놓고 후계자들이 그 창업정신을 퇴색되지 않게 유지, 계승할 때 더욱 모범된 기업으로 사회에 빛을 발하게 된다. 유한재단은 유한그룹의 대주주로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하여 유한문화를 유지 발전시키고 있으며 유일한 선생의 창업정신을 계승시킬 수 있는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하여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 계속 유지되도록 채찍질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후계자는 물론 한 그룹 전 구성원의 뒷받침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며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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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익부문 박청수>

1956년 전주여고를 졸업, 원불교 교무가 되고자 출가하여 동양의 마더 테레사라고 불릴 만큼 한민족과 세계 여러 나라를 위해 자선의 손길을 베풀어 왔다. 국내에서는 국립맹아학교 시각장애자와 종교가 다른 천주교 성라자로 마을 나환자들을 25년간 지속적으로 도와 왔으며 저소득층 탁아시설 운영, 소년원 출소자 쉼터 마련, 장애아 시설 협력 등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여 왔다.

밖으로는 한국인 최초로 대인지뢰 제거에 앞장섰던 사람으로 알려질 정도로 캄보디아의 지뢰제거에 힘쓰며 지뢰피해자들을 도왔다. 식수가 없는 미얀마와 농촌지역에 공동우물 시설을 설치해 주고 아프리카 이디오피아, 르완다. 소말리아 등 15개국에 의약품을 지원하였다. 북인도 히말라야 라닥에 10년전부터 기숙학교 건립을 도와 교육분야에도 봉사의 손길을 뻗쳤으며 1999년에는 카루나 자비병원을 설립, 개원하여 문명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료의 혜택을 받도록 하였다.

또한, 지진, 화재, 폭풍 등의 자연 재해로 큰 피해를 낸 이란, 중남미, 방글라데시, 몽골, 코소보 등의 피해 주민들을 위해 의약품, 성금, 구호품을 모아 보내는 등 종교를 초월한 인류애를 구현해 오고 있다. 또한, 중국 조선족을 위해 정열과 북한돕기도 헌신적이어서 조선족을 위해 연변 자치주에 경신소학교와 장애자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을 위한 한인촌 건설에도 정성을 다하였다. 북한에는 대한적십자사와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본부를 통해 식량과 간장, 비료, 의약품을 지원하며 적극적인 돕기 활동을 펼쳤다.

박교무는 교당내의 한 평 남짓한 숙소에 거하며 검소한 생활과 지치지 않는 봉사의 삶, 인류애를 삶으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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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0/08/31 [00:00]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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